[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0년의 시행착오…베트남人 이름 부르기

입력 2023-03-13 10:00   수정 2023-03-13 16:10

우리말에서 누군가를 부르거나 가리킬 때의 규범은 엄격하다. 경어법이 복잡한 데다 상황에 따라 맞는 관습을 좇아야 한다. “김 씨” 할 때 그가 아랫사람이면 대접해 부르는 말이지만, 윗사람이라면 쓰지 못한다. 이를 벗어나면 예의에 어긋나게 되고, 때론 사회적 갈등을 빚기도 한다. 외국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직함을 나타낼 때 주의해야 한다. 우리처럼 성(姓)과 이름(名)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인명 ‘성+중간이름+본이름’ 順
우리는 공식적·사무적인 자리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 대개 이름이 아니라 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관습일 뿐이다. 나라마다 성 자체가 없는 곳도 있고, 성이 있어도 우리와 달리 이름을 부르는 곳도 있다. 고유한 그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칫 실수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을 때 한국 언론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호찌민 시에서 쯔엉떤상 베트남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의 이름은 Truong Tan Sang.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적으면 ‘쯔엉떤상’이다. 베트남어를 한글로 옮기기 위한 표기규범은 200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동남아 3개 언어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고시하면서 확정됐다. 당시 태국·말레이인도네시아어도 함께 발표됐는데, 그동안 외래어 표기에서 쓰지 않던 된소리(ㄲ, ㄸ, ㅃ) 표기를 인정한 게 특징이다.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태국 ‘푸켓’을 ‘푸껫’으로, 베트남 최대 도시 호치민을 호찌민으로 바꾼 게 이때다.

‘쯔엉떤상 주석.’ 하지만 표기와 호칭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 언론은 그를 어떻게 불렀을까? ‘쯔엉 주석’으로 한 데가 있는가 하면 ‘상 주석’이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두 가지를 다 섞어 쓴 곳도 있다. 이런 오류는 우리와 다른 베트남의 호칭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 베트남 인명은 ‘성+중간이름+본이름’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상대를 가리킬 때 한국과 달리 본이름을 사용하는 게 관습이다. 그러나 문서 등 공식적인 표기에서는 우리처럼 성을 대표 이름으로 삼아 거기에 경칭을 붙이기도 하는 등 다소 일관적이지 않다.
응우옌 서기장 아닌 쫑 서기장이 맞아
쯔엉떤상에서 ‘쯔엉’이 그의 성이다. ‘떤’은 중간이름이고 ‘상’이 본이름이다. 그러니 ‘상 주석’이 맞는 표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름을 취한 표기 방식은 우리 관행과 정서에 어긋나고 낯설다. 그것이 일부 신문에 따라 한국식으로 성을 따서 ‘쯔엉 주식’이라고 적은 까닭이기도 하다.

베트남 인명을 성으로 부르는 언론의 ‘실수’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됐다. 특히 베트남 인명에서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응우옌’으로 부르는 사례가 많았다(참고로 베트남에서 응우옌은 우리나라의 김 씨, 이 씨만큼이나 흔한 성이다). 2014년 10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초청으로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이 방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에서는 대부분 그를 ‘응우옌 서기장’으로 불렀다. 응우옌이 성이고 푸가 중간이름, 쫑이 본이름이다. 그들의 관습에 따라 부르면 ‘쫑 서기장’이라 해야 바른 표기다.

그뒤 1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로 와보자. 지난 3월 2일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보반트엉 공산당 상임서기를 권력 서열 2위인 국가주석에 내정했다. 우리 언론에선 그를 가리켜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일원인 트엉은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 서기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 쫑 서기장은 지난해 11월 반부패 중앙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부패범죄 척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보가 성이고 반이 중간이름, 트엉이 본이름이다. 그를 가리켜 베트남식으로 ‘트엉 주석 내정자’로, 응우옌푸쫑 서기장을 ‘쫑 서기장’으로 불렀다. 베트남 인명의 호칭·지칭 관습을 이해하고 그들의 방식으로 이름을 부르기까지 한국 언론은 10년의 시행착오 기간을 거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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